금요일, 9월 26, 2014

이단들의 급급함을 보면서

올해 들어서 이단들로 잘 알려진 단체들이 저의 글들을 특정 사이트 법을 통해 인권침해 또는 명예훼손이라는 명목으로 차단시키고 삭제하도록 압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비유컨대, 젓갈 맛을 안다고 하면, 그것을 잊을 수 없는 것이 하나의 생리인가 봅니다.

그런데, 너무 초보적인 행보에 대해 상대할 가치가 없어보입니다. 자기들이 이단이 아니면 아니라고 분명히 밝히면 될 것을 또한 반박문을 인터넷에 올려서 표현하면 될 것을 남의 글에 대하여서 제제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는 모습이 참 어리석어 보입니다.

하늘을 손바닥으로 가릴 수 있을까,

첫째로 언젠가 밝혔지만 결국 법적인 시비를 가린다면 누가 진짜 하나님을 믿고 있는가 하는 것에서 시비는 가려지는 것입니다. 제대로 하나님을 말하지도 못하면서 이단 소리는 싫어하고 명예훼손을 말하고 있고 어리석기 짝이 없군요. 하긴 자기들의 단체의 물질적 이익이라는 개념 하나님을 바르게 말하지 못하고 얻게 되는 수익에 차질이 생긴다는 현실성이 슬퍼서 그런 것은 이해됩니다만 그렇다고 하나님을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가르친다면 그것은 속이는 것이요 사기가 될 수 있음은 또한 재고해야 할 것입니다.

이미 하나님에 대하여서 분명한 소리를 내지 못한다는 법적인 판단시비를 가리고 부끄러워할 것인가요.. 그만하시지요..

그리고 둘째로, 인터넷 특정 사이트를 사용하지 못하게 한다고 다른 모든 인터넷을 통제할 수 있다는 발상을 하시는 것 같아 보이니 참 어리석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는 검색의 시대인데, 떠도는 글들이 삭제하기 전까지 남게 되는 시대인데, 쓸데 없이 자극하는 것은 어리석지 않을까요..

요즘은 이단들 중에 신천지 교인들이 더욱 요즘 말로 초딩적 발상과 행보를 행하고 있는데, 아마도 신천지 요한계시록 해부하기 강좌가 보급되고 있기에 그런지 더욱 예민해하는 것 같습니다.

자숙하시지요.. 그런 급급함이 더욱 부끄러움을 가중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암튼 연민의 감정도 가져봅니다. 

목요일, 8월 28, 2014

인터넷 글쓰기 문화의 정착을 바라보며

인터넷에 글쓰기와 서적 출판의 자유에 대한 검열이라는 것
아마도 전자가 통제하기가 쉽겠지요.. 출판의 자유는 있으면서
인터넷 글쓰기 포스팅의 자유는 쉽게 통제되는 현실 ...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명예훼손에 대한 소지가 있으면
바로 법으로 해결하자는 식으로 접근하기 보다는
아니면 아니다고 반박문을 내도록 하고
그것에 대한 시비에 따라서
결정하도록 배려하는 것이
글쓰기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인권 침해 .. 그것이 성립되는지
명예훼손이라면 아니라는 글을 적극 쓰도록 하고
서로 논의하도록 해주는 것이 언론 중재의 좋은 것이라고 봅니다.


일방적으로 시끄러워진다는 개념에서 법적인 통제 접근하면
여기서는 건전하고 합당한 비판이라는 개념과 문화가 인터넷에서는
세워질 수 없습니다.


그리고 비판이라고 하는 것도 근거가 성립되는지 또 성립된다고 보여지는
근거를 제공하면 그것의 시비를 가리고 이후에 법적 처리를 행하는 것
순서라고 보는데, 한국의 일반 포털사이트에서는
그런 배려와 문화를 마음에 둘 수 없는 것인지
아쉽습니다.


인터넷으로 소설과 문학 비평문학적 접근을 하는 자들도 있는데

근거 있는 비판과 합당한 글쓰기
언론 출판 문화의 자유가
인터넷에서도 정당하게 보호되었으면 합니다.







화요일, 8월 12, 2014

중세의 잘못은 과거형이고.. 언어 농담이라..

요즘 새로 선출된 교황님의 한국방문으로 상당히 고무된 가톨릭의 입장과 그에 따른 여러 비난들이 득세함에 대한 기득권을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개인적으로 진짜 교황으로 느껴졌던 분은 아마 베네딕토 16세라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상당히 한때 긴장한 적이 있습니다. 학문적 깊이와 소신에 대한 것에 있어서 상당히 긴장했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분들은 그런 것을느끼지 못했습니다.


한 국가의 원수로서 교황의 방문은 환영합니다.
그러나 그의 증거에 대해서는 견해를 달리함니다.


아마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에 이만한 영광을 볼 수 있을까, 한마디로 모든 영광이 집중되어지고 있는 것에 조심하셨으면 합니다. 이것은 위하는 말입니다. 모든 영광은 하나님께라는 표어만큼은 표면상으로라도 가톨릭이 말할 수는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식으로 이야기 해서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영적 식탁의 빈곤이 포장되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기세가 드높아지는 모습은 이해하지만 무지의 표현에 대하여서 한마디 하겠습니다.

'중세의 잘못은 과거형이고'..'현대 개신교의 잘못은 현재 진행형이다'라는 표현을 읽었습니다.


아마 영어로 표현하는 가운데서 아이들이 장난을 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과거형이란 이미 끝난 것이라는 것과 지금과 아무 상관이 없다는 그런 의미의 표현이고 이어서 가톨릭은 전의 죄와 전혀 상관이 없다는 입장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현대 개신교의 잘못은 현재 진행형이란 말은 아직 끝나지 않고 여젼히 죄인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해석은  달라질 수 있다는 것도 주목했어야 했습니다.


중세의 잘못은 과거형이다.

이 해석은 기록이라는 것입니다. 끝난 것이 아니라 이미 전제되어진 것이라는 것도 사실상 옳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 전제되어진 잘못은 현제 고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끝이라면 현대를 살아가는 중세의 사상적 전제 위에 세워진 전통의 가톨릭은 회개의 진행형은 없는 것이 된다는 것도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현대 개신교의 잘못은 진행형이다

잘하고 있다거나 잘못을 정당화한다는 것이 아니라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아직 회개할 기회가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회개의 기회가 없는 이미 끝난 자들의 모습과 달리, 세리와 같은 자로 하나님의 받으심이 있는 현재 진행형의 사람들은 은혜를 사모하는 가운데서 거기에는 그래도 믿음과 소망이 있을 수 있습니다.



용서받은 죄인, 그는 죄를 지을 때도 있지만, 그 죄를 정당화하거나 주님을 이용적 개념으로 생각하지 않는 한, 그에게는 긍휼이 따른다는 것도 읽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예정하심에 대한 것을 이해하고 언어의 시제를 해석해야지 그 순서가 바낀 가운데 서기관들의 잘못된 전승을 이어갈 수 밖에 없다는 것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세리와 같이 식사할 수 있겠느냐라는 말이 바로 중세의 잘못은 과거형이고 개신교의 잘못은 현재진행형이라고 말하는 자들의 인식에서 비롯되어질 수 있는 것이며 바리새인들의 모습이 된다는 것도 재고해야 할 것입니다.


















참고 1) 교황에 대해 인정하는 것은 아니며, 교황이 인정되어진다는 세상의 모순되어지지만 받아들여진 상식적 입장의 기득권에 동의해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참고 2) 진행형이란 개념이 한정적 입장과 만날 수 있다는 점, 이미 회개했다고 하지만 단지 면죄부, 면벌부에 대한 개념만이 중세의 잘못이 아니라는 점그러한 것의 잘못이 아직도 이어지고 있는데, '끝'하고 말한다면 코메디에서나 읽을 수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참고 3) 하나님의 예정하심은 결정론적 개념으로 이해되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이런 시제라는 개념으로 장난이 가능하다는 것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언어의 유희라는 것이 납득 당위성의 재가는 없다는 것을 재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참고 4) 전통을 이해함에 있어서 많은 신비주의를 낳고 신비종교들이 많이 생겨났는데, 그것에 대하여서 실재론적 개념이 납득 당위성을 입지 못한다면 그 모습은 아주 건장한 사냥을 잘하는 에서의 모습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를 사랑하시지 않았습니다.

참고 5) 실재의식이 납득되어질 수 있는 중심을 가진 자가 언약의 백성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축복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에서의 시복에 많은 사람들의 영광이 드러나겠지만 글쎄요. 지나는 바람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는 것, 볼 수 있는 눈이 주의 사랑하는 작은 무리들에게 있을 것입니다.

참고 6) 언어를 막 배우는 아이들의 장난에 필요 이상으로 예민하게 글을 쓴 것 같네요..^^ 암튼 우리 나라에 오신 분, 아무 사고 없이 일정을 마치고 돌아가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