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 12월 26, 2006

공회(Catholic)와 다르마

사상사적인 입장에서 본다면, 신인식의 확실성이라고 하는 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 인식의 확실성을 의문시하는 것에 동의할 수도 있는 경향이 있다고 하겠다. 그러한 것의 한 모델이라고 하는 것이 작금의 구교인 가톨릭불교연합적인 상호 인정적인 입장을 추구하는 경향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모임에서 신을 찬미하는 노래를 부르는 음악회나 같은 입장에서 활동하는 구제의 모습들 또는 그들이 믿는다고 하는 존재의 탄생일에 서로 격려하는 모습들이라고 하는 것도 이러한 것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것은 과연 어디서 오는 것일까 하는 질문이 되어지는데 이것은 앞서 언급한 회의주의적인 신인식의 확실성과 그에 따른 보편적 사고의 추구라고 하는 것이 동 서양의 인식의 공통적인 모습이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사도신경에 고백되어지고 있는 '공회'(Catholic)과 다르마(각주1)라고 하는 것이 표현의 용어적 차용적 기원은 다르다고 하여도 같은 보편적 인식이라고 하는 것으로서 탈 해체적 입장에서 또는 탈 실존적 입장에서 초월적 보편이라는 개념으로 서로를 인정하는 가운데서의 보편성을 서로 인정받기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단적으로 표현해서 잘못이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동`서양의 차이라는 점에서 그 다름에서 비롯되어지는 동일시에 대한 잘못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보편의 실존이라고 하는 것을 바르게 읽어서 공회를 고백해야 하기 때문이다. 즉 거룩한 성도들의 공회 보편적 교회 라고 하는 것은 주의 택하신 백성들로서의 주의 절대적 보편적 재가가 있다는 것으로서의 존재적 정당함이 있는 것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임의적 보편적 아주 큰 전체를 말하는 보편이 결코 아닌 것이다.

한마디로 자존의 절대자로서의 자존적 절대 정당함으로써의 실존적 속성인 '절대 보편'이라는 것과 본래성을 말할 수 없는 임의적 보편으로써의 보편이라고 하는 것을 같은 것으로 간주하지 않고서는 이런 연합으로서 또는 그 실존적 정당함을 비로소 부여함을 나타내거나 제스처적 입장을 취하는 것은 서로의 기만이 되어질 것이다. 이것은 구교의 실재론적 입장이 하나님의 속성으로서의 절대와 보편을 마음에 두지 않는 가운데서의 행보임에 있어서는 그 신앙적 입장의 실존적 합당함은 의문의 죽이는 것으로서 실존적 자리매김이 되고 만다고 하겠다.

이러한 구원을 본래적으로 말하지 못하는 자들과의 구주나심에 대한 동일한 행보라고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은 가히 구원을 이루신 예수님에 대한 믿음과 인식이라고 하는 것이 바르다고 말하기는 너무나 요원한 문제가 된다고 하겠다. 이러한 것은 성경말씀을 의지하기 보다는 전통이라고 하는 것을 맹목적으로 성경과 동일시하는 경향에서 그리고 그것에 대한 숭상적 개념에서 이러한 개념들의 임의적 사용과 그에 따른 잘못을 취하게 된 것이라고 하겠다.


참고설교 '온세상 구주'




각주1)미야자키 마사카츠, 하룻밤에 읽는 세계사 이영주 중앙 M&B p. 74.
불교는 그 후 마우리아조가 보호했다. 인도 전역을 정복한 마우리아조는 다르마(보편적진리·불법)에 의한 통치를 목표로 삼고 불교를 퍼트렸다.

미야자키 마사카츠, 하룻밤에 읽는 세계사 이영주 중앙 M&B p. 75
기원전 3세기에 불교교단은 화폐로 하는 보시의 시비를 둘러싼 논쟁으로 상좌부 불교와 대중부 불교로 나뉘었다.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이어받아 개인의 깨달음을 중시하는 상좌부 불교(소승불교) 실론섬에서 동남아시아로 전해져(남방불교) 인도차이나 반도의 여러 지역으로 확대되었다. 한편 서북인도로 전해진 불교는 그리스·페르시아 문화를 수용하여 다신교가 되어 보살에 의한 중생의 구제를 교의에 포함시킨 대승불교가 되어 중앙아시아에서 중국과 한국, 일본으로 전해졌다(북방불교).

미야자키 마사카츠, 하룻밤에 읽는 세계사 이영주 중앙 M&B p. 76
인도에 대제국이 건설되는 계기가 된 것은 알렉산드로스 대왕 군대의 서인도 침임이었다. 침입에 대비하여 대군을 조직한 찬드라굽타는 알렉산드로스 대왕 군대가 철수한 후의 혼란을 틈타 기원전 317년경에 마우리아왕조를 세워 갠지스 강과 인더스 강 유역을 지배했다. 제 3대 아소카왕은 남인도의 드라비다 세계를 정복해 남단을 제외한 인도의 대부분을 장악했다. 그러나 비참한 전쟁을 경험한 아소카는 불교에 귀의하여 불법(산스크리트어로 다르마)에 의거한 정치를 지향하여 전국에 마애비와 돌기둥을 세워 나라에 불교정신을 전파하고 경전을 정리했다. 아소카왕은 다양한 문화와 민족으로 된 인도 세계를 불교라는 이데올로기로 통합하고자 했던 것이다.


글쓴이의 부언 : 어떤 사실에 대한 본래성이라고 하는 것은 자존의 하나님외에는 결코 말할 수 없는 것이며 비로소 취할 수 있는 자도 없다. 깨달은 자로서의 숭상을 받는 석가모니도 그러한 것을 말하지 않은 대중적 구제라는 대승불교적 입장이라고 하는 것은 그 본래성을 말하지 못하는 가운데서 페르시아적 개념의 영향으로서 모습을 마음에 두어야 하며 또한 구제라고 하는 교의도 임의적인 것밖에 안되는 것이다. 즉, 파생적 당위성으로써 구제라는 개념은 본래적인 인생의 구원의 사실을 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주 간단한 내용의 각주를 달게 되는 것은 이러한 단순하면서도 단정적인 표현이 가능하다고 할 때에 전반적인 사고의 재고가 보다 더 강한 표현이 되어질 것으로 생각해서 인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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