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8월 18, 2005

에티엔느 질송(Etienne Gilson)은 틀렸다..- 전 토미즘의 사상비판

에띠엔느 질송의 사상적 입장은 가톨릭에서 실재사상을 다루고자 했다는 것에 대하여서 상당히 고무적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의 입장과 접근방식은 틀렸다는 것을 말해둡니다.

일반적으로 토미즘에 있어서는 실재를 말하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에띠엔느 질송이 토미즘에서 실재를 말하고자 함에 있어서도 기독교철학의 실존을 말하기 위한 것으로 성경에서 하나님 자신을 나타내는 출애굽기 3:14절을 인용하고 있는데(각주1) 그것은 인용가능성만 생각하고 있지 그 정당함이 결여되어진 것으로써 여전히 그 실재론을 실제적으로 말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코넬리우스 반틸은 질송의 그러한 기독교철학의 성립과 실재를 말함에 있어서 잘못되게 되어지는 것이 삼위일체라고 함을 철학적 개념으로 왜곡되어진다는 것을 말하며 비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분명히 말하지 않았지만

저와 같은 입장에서 비판하였을 것입니다. 그것은 반틸이 '하나님의 사유를 따라서 사유해야만 함을 함의 한다'(각주2)

그것은 게할더스 보스(G. Vos)가 이야기 한 것과 같이 '메시야적 사유'(각주3)라는 것의 의미를 말하며 또한 그것은 가능성의 여러 언어가 있다고 하여도 하나님으로부터 그리스도 예수로부터의 정당함을 얻는 것으로써의 실재라는 개념의 사실을 말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서 단어적 인용이 가능하다는 것만으로써 그 언급하고자 하는 것의 실재와 또한 사실에 대한 것을 말함에 있어서는 그 사실의 정당함을 말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즉 질송의 기독교철학의 실재라는 개념 자체가 이미 하나님과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물론 토미즘의 특히 신 토미즘의 입장에서 말한다고 하지만 토미즘은 이미 신론적 정당함에서 실재를 찾는 중심이 없습니다. 그것은 신학대전 4권에서 읽을 수 있는 이방에 대한 변증에서는 '알미니안적 입장을 취하고 있는데 결국 이것은 질송의 사상으로 나타난다고 함과 일치'(각주4)되기 때문입니다.